오랜만의 휴가였다. 본즈는 실로 오랜만에 휴가를 떠나는 셈이었다. 엔터프라이즈 전체가 쉬는 날이 아니고서는 CMO의 자리는 쉽게 내려놓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잠시라도 휴가를 내고 바에서 술을 한 잔이라고 걸치려치면 커뮤니케이터를 통해서 항상 자신을 찾는 목소리가 들렸고, 그건 본즈의 성격상 무시하고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쌓인 추가 근무와 야근 일수가 만만치 않았다. 그러니까 자신은 이 휴가를 누릴 자격이 충분했다. 본즈는 자신의 쿼터에서 짐을 꾸리고 있었다. 중간 자신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오는 것은 덤이었다. 이번에야 말로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쉴 수 있었다.


 " 본즈. "


본즈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커크가 문간에 어색하게 서있었다. 제임스 T. 커크가 어색해 보인다고? 그것도 자신의 앞에서? 커크는 항상 태연하다 못해 뻔뻔하기까지한 얼굴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이런 표정의 커크를 보아하니 그는 분명히 자신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소식을 가져왔음이 분명했다. 본즈는 잔뜩 경계하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휴가가 취소되었다거나, 휴가가 축소되었다거나, 본부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으라거나. 하지만 커크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의외의 말이었다.


 " 나도 데려가. "

 " 뭐? "


 본즈는 무언가를 단단히 잘못 들었다는 듯이 커크를 쳐다봤다. 본즈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기가막힌 제안이었다. 본즈는 특유의 툴툴거리는 표정을 하고 커크를 쳐다봤다. 그러니까 나보고 휴가 동안에 너를 돌보라는거야? (Do you mean I have to babysit you through out the whole vacation?) 본즈가 그렇게 물어보자, 커크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돌보라는건 아니고, 그냥 같이 앉아있는 것도 안되나? (Not babysit, can I just sit down with you?), 라고 가벼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커크는 장난스럽게, 농담처럼 건냈다. 본즈는 대답하지 않았고, 고려 대상도 아니라는 듯이 커크로부터 등을 돌리고 짐을 마저 꾸리기 시작했다. 본즈는 커크가 저렇게 나올 때가 오히려 진심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 나도 같이 가면 안돼? "

 " 안돼. "


 오, 본즈는 커크를 알아도 너무나도 잘 알았다. 그는 이미 자신이 무어라도 대답하기도 전에 이미 짐을 챙겨들고 자신을 찾아온 것이리라. 그러니까 굴복해서는 안된다. 커크는 문에 기대서 짐을 꾸리고 있는 본즈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본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그는 자신의 뒤에 커크가 서있다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잊으려고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부러 침대에 자신이 벗어둔 잠옷을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는 가방에 쑤셔넣었다.


 " 집으로 가는거 아니야?  "

 " 안돼. "


 커크의 질문에 본즈는 전혀 엉뚱한 대답을 했지만 어찌되었든 결론적인 대답이기는 했다. 본즈는 애가 딸린 채로 휴가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이번 휴가만큼은 정말이지 푹, 말썽 부리는 사람 없이, 푸욱 쉬고 싶었다. 침대에서 늦게까지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술 마시고 싶을 때 마시고, 자고 싶을 때 자고. 그는 혹을 달고갈 생각은 추호에도 없었다. 본즈는 뒤돌아보면 안돼, 뒤돌아보면 안돼,를 몇 번이고 되내었다. 하지만 커크는 본즈의 문간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 조안나, 이번 여름은 엄마랑 보낸다고 하지 않았어? "

 " 조안나가 있든 없든 안돼. "


 본즈의 단호한 대답에 커크는 체,하고 투덜거렸다. 그리고는 본즈가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성큼성큼 기다란 다리를 휘적휘적 휘저으며 그의 쿼터 안으로 들어와 침대 위에 털썩하고 앉아버렸다. 본즈는 이골이 났다는 표정으로 커크를 잠시 쳐다보고는 이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번만큼은 짐에게 져줄 생각이 없었다. 조금도 없었다. 커크는 본즈가 자신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자, 토라진 것처럼 풀썩하고 침대 위에 아주 드러누워버렸다. 

 

 " 왜애. "

 " 휴가잖아. 상사랑 같이 보낼 생각 없어. "

 " 나를 상사로 생각하기를 하고? 날 함장님이라고 부르지도 않잖아. "


 본즈의 말에 커크는 푸핫,하고 웃었다. 생각해보면 본즈가 자신을 제대로 Captain이라고 부른 적은 없었다. 그러니까 아주, 아주 위험한 순간을 제외하고는, 그러니까--- 지난번에 본즈가 자신의 멱살을 잡고, 주먹을 날렸을 때, 그때에서야 본즈는 자신을 함장이라고 불렀다. 정신 차리라고, 하지만 그때를 제외하고는 함장 대접해준 적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커크가 딱히 그걸 바라는 것도 아니지만, 커크는 본즈가 자신을 짐이라고 부르는게 좋았다. 그리고 때때로 kiddo(꼬맹이),라고 부르는 것도 좋았다. 그게 본즈만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내버려두었다. 정말 상관없었으니까. 

 

 " 아이오와에 아무도 없단 말이야. 아니, 거기엔 아무 것도 없단 말이야. "

 " 안되는건 안되는거야. "


 본즈는 단호한 태도를 거두지 않았다. 보통 이 정도로 조르면 못 이기는 척 넘어가주는데, 이번에는 정말 아주 얄짤이 없는 모양이었다. 커크는 본즈와 눈을 마주치려고 했지만 본즈는 짐 꾸리는데만 열중한 뿐이었다. 본즈는 자신에게 얼굴을 들이미는 커크를 밀어내며, 거기서 비켜, 짐, 옷 구겨져,라고 말할 뿐이었다. 이번만큼은 정말 소용없는 모양이었다. 커크는 한숨을 크게 쉬며 침대에서 자신의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어깨가 축 쳐진대로 터덜터덜하는 걸음으로 본즈의 쿼터를 가로질렀다. 그리고는 문 앞에 떨궈두었던 자신의 짐을 어깨에 짊어지며 중얼거렸다.


 " 이번 생일은 몇 년만에 혼자 보내겠네. "

 " 네  생일은 겨울에나 가야 있잖아. "

 
 " 난 생일 두 번이잖아. "

 " Damn it, Jim. "


 본즈는 정말이지 한번도 커크를 이겨본 적이 없었다.




*

 " 아빠, 안녕. (Hi, dad.) "

 " 조안나, 여기서 뭐하는거야? 엄마는? "


 본즈는 자신의 집 앞에 보이는 작은 인영에 걸음을 서둘렀다. 거의 뛰다시피하는 걸음이었다. 한적한 들판에 지어져 있는 나무로 된 집의 현관에는 그네 의자가 걸려 있었고, 그 위에 작은 소녀가 앉아있었다. 그녀는 본즈를 보자마자 의자에서 뛰어내려 가방을 등에 매고 본즈 앞에 섰다. 그녀는 본즈의 어린 딸이었다. 본즈를 무릎을 꿇고 그녀의 시선과 높이 맞췄다. 그녀는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면서 대답했다.


 " 엄마가 갑자기 일이 생겼대. "

 " 나 여기 있으면 아빠, 곤란해? "

 

 그녀의 물음에 본즈를 그럴리가 없다는 듯이 오, 아니, 그럴리가 없지,라고 대답하며 그녀를 자신의 품에 앉았다. 본즈를 뒤 따라오던 커크는 그녀와 눈을 마주 쳤다. 그는 한 쪽 손으로는 제 배낭끈을 잡고 있었다. 커크는 그녀를 향해 활짝 웃으면서 비어있는 손을 주머니에서 꺼내 그녀에게 손가락 인사를 건냈다. 조안나는 한참을 멍하니 커크를 쳐다보더니 이내 제 아버지 품으로 얼굴을 묻어버렸다. 커크는 그런 그녀가 귀여워 킥킥거리며 웃었다.


 " 세상에, 본즈, 너랑 판박이네. 작은 본즈네. "

 " 내 딸을 뼈다귀라고 부르지마. "


 본즈는 그녀의 가방과, 그녀를 자신의 품에 안아들고 일어나면서 커크를 향해 툴툴거렸다. 본즈가 자신에게 본즈라는 칭호에 대해서 불평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본즈의 말에 커크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고, 본즈가 조안나를 안느라 현관에 방치해 두고간 본즈의 가방을 읏쌰,하고 비어있는 자신의 어깨에 걸치고는 본즈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조안나가 왔으니 너는 이제 그만 가보라고 내쫒기기 전에 서둘러서.


 조안나는 제 아버지의 품에 안겨 가끔 고개를 돌려 힐끔힐끔하고 커크를 바라보았고, 커크는 본즈를 판박이고 닮은 그의 작은 딸이 귀여워 눈이 마주칠 때마다 환하게 웃어주었다. 본즈는 조안나를 부엌 의자에 내려놓고는, 그녀에게 오렌지 쥬스나 필요한게 없냐고 물어봤다. 본즈는 집에 오기 전에 미리 장을 봐두기 다행이었다고 중얼거렸다. -요즘엔 물론 직접 장을 보러가는 일은 없기야 했다만- 그는 조안나를 위에 오렌지 쥬스를 유리컵 한 가득 따라주었고, 찬장에서 작은 크래커를 꺼내 치즈를 올려 그녀 앞에 놓아주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지켜보며 커크는 본즈가 아버지라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하기사, 그는 크루들을 언제나 잘 돌봐주는 사람이기는 했다. 생도 시절에도 그는 항상 자신을 챙겨주었었고, 어느새 의무실은 상담실이 되기도 했으니까. 본즈는 왜 도대체 사람들이 자신한테 몰려와서 고민 상담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툴툴거렸지만, 그걸 생각하자 커크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생각해보면 이번 휴가도 자신이 그에게 졸라서 그를 쫒아온 것 아니었는가. 그래, 그는 아버지였다. 커크는 아주 조용히, 본즈가 눈치채지 못하게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조안나는 유리컵을 내려놓으며, 반짝이는 유리 사이로 그런 커크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커크는 본즈에게서 시선을 돌리다가 조안나와 다시금 시선이 맞주쳤고, 그녀의 목에 걸려있는 작은 목걸이를 보았다. 연한 로즈빛 광석이 빛나는 목걸이였다. 커크는 그 모습을 보고, 정말 잘 어울리네, 다행이네,하고 웃었다. 조안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커크를 쳐다보았다. 


 " 그 목걸이 생일 선물로 받았지? 


 조안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커크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했다. 그녀의 반응에 커크는 본즈를 쳐다보면서 말도 안해줬어? 섭섭하네,라고 장난스럽게 투덜거렸다. 본즈는 허리에 손을 얹고 잔뜩 불편해진 표정으로 커크를 쳐다보았다. 조안나 앞에서 평상시의 험한 말버릇을 내보일 수는 없었서 본즈는 다만 허리에 손을 얹은 채, 눈알을 굴릴 뿐이었다. 그런 본즈의 얼굴에 그래도 전해는 줬네, 커크는 웃었다. 


 " 그거 내가 선물한거야. 네게 어울릴 것 같아서. "


 커크의 말에 조안나의 눈이 커졌다. 본즈와는 달리, 커크는 웃었다, 조안나는 솔직했다. 그녀는 조용한 목소리로 감사합니다, 정말 너무 예뻐요!,라며 커크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커크에게는 어린 동생이 없었다. 있다면 체콥 정도랄까. (체콥도 이제는 청년이었지만) 조안나의 사랑스러움에 커크는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커크는 조안나의 사랑스러움이 그녀의 아버지에 대한 애정에서 나오는 것일지, 그녀가 풍기는 사랑스러움일지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무어가 중요하랴. 커크는 가양 어깨에 매고 있엇던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그녀를 향해 손을 건냈다.


 " 조안나지, 나는 커크야, 짐 커크. 만나서 반가워, 조안나. " 


 조안나는 자신의 작은 손은 커크에게 건냈고, 커크는 그 푸른 눈을 밝게 반짝이며 그녀와 악수를 나눴다. 그리고 제 습관처럼 그녀의 작은 두 볼에 가볍게 키스를 건냈다. 그리고 그건 본즈가 채 커크를 말리기도 전이었다. 아주 저들만에 세상에 빠진듯한 그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본즈는 탁,하고 큰 소리를 내며 커크 앞에 차가운 오렌지 쥬스를 따라놓은 유리잔을 내려놓았다. 본즈의 볼맨 얼굴을 보자마자 커크를 깔깔거리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자신과 제 아버지를 번갈아 쳐다보는 조안나를 힐끔하고 쳐다봤다.


 " 아빠 닮아서 나중에 크면 아주 미인이 되겠어. "


 그녀는 우주에서 내려온 이 왕자님이 좋았다. 반짝이는 금발 머리칼에, 푸른 눈을 반짝이는 그는 그녀가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멋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커크가 옆반 토마스보다, 윗학년 조니보다 멋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 아니, 그는 심지어 클라우드 선생님보다도 훨신 훨씬 멋진 사람이었다. 그녀는 반짝반짝이는 이 왕자님이 계속해서 자신들의 집에 머물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본즈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그들의 여름 휴가는 평화로웠다. 커크를 데리고 오는 순간 뭐, 주로 사건, 사고 그리고 사건-사고로 구성되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평소의 커크가 일으키는 문제들을 생각한다면 본즈의 오해가 그리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도 없는 법이었다. 하지만 본즈의 생각과는 정반대였다. 정말 정확하게 정반대의 휴가였다.


 그가 몇년동안 보낸 휴가 중에 가장 평화롭고 반짝이는 시간들이었다. 그래, 제법, 행복은 이런 형태일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법한 시간들을 보냈다. 그들은 과수원이 넓게 펼쳐져 있는 조지아의 본즈의 집에서 말도 안되게 유쾌한 여름을 보냈다. 그들은 과수원에 물을 주다가 커크의 장난기가 발동하여 어느새 한바탕 물놀이를 하기도 했으며, 편을 갈라 숨바꼭질을 하기도 했다. 햇살에 물빛이 반사되어 반짝이는 그 모습은 여름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들은 물놀이를 하고, 물에 잔뜩 젖어서는 그대로 잔디 위에 대자로 누워 푸른 하늘을 올라보며 옷을 말리고는 했었다. 항상 머리를 차분하게 묶기만 하였던 -그건 전부인의 취향이었다.- 조안나는 양갈래로 머리를 따고는 땀에 젖도록 뛰어다니기도 하였으며, 깔깔거리며 소리 높여 웃기도 하였다. 자주 우주에 나가있기에 그녀를 자주 볼 기회가 없었지만서도 본즈는 조안나가 이토록 밝게 웃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항상 차분하고, 조용하고, 얌전한 아이였다. 그래, 자신과 그녀가 조안나를 너무 일찍 철든게 해버린 것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건 본즈에게 언제나 짙은 미안함이었다. 커크는 그녀에게 드리운 슬픔을 거둬내는 밝은 여름빛과도 같았다.


 본즈는 커크가 조안나와 이토록 잘 어울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커크에게 그에게 형이 있었다고 듣기는 했었지만, 그의 이야기 속에서 그는 항상 혼자였고, 커크는 혼자 큰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커크는 사람과 어느 거리 이상으로 가까워지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커크의 이름을 들어본 사람들은 본즈가 이렇게 말한다면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 것이라고 일갈할 것이 틀림없었지만, 수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도 커크는 외톨이였다. 그래, 엔터프라이즈를 타면서 많이 변했지만, 어린 시절의 습관은 쉽게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커크가 조안나와 깔깔거리면서 잔디 위를 구르는 모습을 보면 본즈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설령 커크가 호스로 자신을 공격해서 쫄딱 젖어버린다고 하더라도.

 

 " 내가 프렌치 토스트는 제법 만들지. "


 한참 낮잠을 자고 일어난 뒤, 세 사람은 부엌 앞에 나란히 섰다. 물놀이 힘을 다 썼기 때문인지 모두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났고, 조안나는 조심스럽게 프렌치 토스트를 먹고 싶다는 얘기를 꺼냈다. 평소 요리는 주로 본즈가 하기야 했지만 프렌치 토스트만큼은 그가 자신없어 하는 메뉴였다. 그는 늘상 토스트를 태워먹기 일쑤였기 때문이었다. 그때, 까치집이 된 머리를 하고 팔을 거둬부치면서 나온 것은 커크였다. 본즈는 의외라는듯이 커크를 쳐다봤다. 그 시선에는 믿어도 되겠느냐는 시선이 깃들어 있어서 커크는 그럼 본즈가 할래?,라고 물었고, 본즈는 부엌에서 비켜서며 앞치마를 벗어서 커크의 목에 걸어주었다. 커크는 자신의 목덜미를 스치는 그의 손길에 피식하고 웃었다.

 

 그리고 그날 커크가 만든 프렌치 토스트는 놀랍도록 맛있었다. 설탕과 시나몬을 뿌려 버터에 겉은 바삭바삭하고, 속은 포닥포닥하게 구워진 프렌치 토스트는 그들이 함께 휴가처럼 부드럽고, 달콤했다. 물론 프렌치 토스트를 한 입 베어물은 조안나의 한 마디가 본즈의 달콤한 휴가를 와장창 부셔버리기는 했지만.


 " 아빠, 나 커크랑 결혼할래. "





 * 

그 뒤로 커크가 때때로 본즈에게 시달렸음을 말할 것도 없었다. 본즈는 틈만 나면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커크를 노려보고는 했었다. 영문을 알리 없는 엔터프라이즈 크루들은 커크 함장님이 맥코이 박사님께 잘못을 해도 단단히 잘못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타인의 사정에 좀처럼 간섭하지 않는 스팍마저 커크보고 이제 그만 맥코이 박사님에게 사과를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조언을 했을 정도였다. 커크가 아무리 그게 아니라고, 아니라고!, 외쳐도 커크의 화려한 전적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에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본즈는 조안나와 통화를 하고 난 뒤면, 정해진 수순이 되기라도 한다는 듯이 커크를 찾아왔다. 그리고는 경고의 말을 건내고 가고는 했다. 물론 그때마다 커크의 반응은 항상 똑같았지만 말이다. 커크는 깔깔 웃으면서 본즈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물론 그게 방금 조안나와 통화하고 와서, 커크는 어떻게 지내고 있냐는 질문을 받은 본즈에게 통하지는 않았지만.  그때마다 본즈는 커크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러 커크가 받을 수 없을 때에 조안나와 통화를 할 정도였다. 본즈가 다시 쿵쾅거리면서 자신의 쿼터 앞으로 찾아왔을 때, 커크는 본즈가 조안나와 방금 막 통화를 끝내고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본즈는 어김없이 손가락을 들어 커크를 향해 경고의 손짓을 날렸다.


 " 조안나를 넘보면 가만두지 않을거다, 짐. 지난번 하이포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걸 알아둬. "

 " 본즈, 그럴 일도 없겠지만, 조안나를 조금 더 믿는 것은 어때? " 

 " 내가 못 믿는건 너야, 짐. "


 커크의 대답에 도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듯이 본즈는 반문했고, 그러면 커크는 두 눈이 예쁘게 휘어지게 웃으며 본즈를 쳐다봤다. 본즈는 자신의 말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커크는 자신을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은 얼마 없다는 것을 알았다. 본즈는 그걸 이해하지 '못해주는' 고마운 사람 중 하나였다. 본즈가 무어가 그리 좋아 웃느냐고 심통을 부리면, 그런 본즈의 얼굴을 커크는 아무렇지 않게 빤히 쳐다보았다.


" 그러니까, 나는 못 믿더라도 조안나를 믿는게 어때. 그녀의 취향은 이렇게 나쁘지 않을거야 " 


 섬세한 취향의 레너드 맥코이의 딸이잖아,라고 대답했다. 그때만큼의 그의 목소리는 사뭇 진지했는데, 바로 다음 순간, 그는 본즈가 엄청난 농담을 했다는 것처럼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웃었다. 그녀가 본즈의 취향을 닮았더라면 그녀가 정말로 자신을 좋아하는 일은 없으리라. 본즈가 잔뜩 경계심을 내보이게 내버려둔 뒤에, 커크는 다시 함장의 모습으로 돌아와 태연하게 본즈에게 업무 지시를 내리고는 함교로 돌아가버렸다.


 본즈는 뒤돌아 걸어가는 커크의 뒤에서 불편한 얼굴로 커크를 쳐다보기만 했다. 솔직히 말하건데 -아니, 커크한테 말할 생각은 절대 없지만- 커크만큼 잘 생기고, 왕자님처럼 반짝거리는 사람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그녀는 사춘기라고. 본즈는 팔짱을 끼고는 애꿎은 바닥을 차며 섬세한 취향 좋아하시네,라고 중얼거렸다. 조안나는 자신의 취향을 닮으면 안됐다.


 Damn it. 


























1)

본즈가 딸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가 않습니다. 아니, 많지 않다기 보다는 거의 없지요. 아마 커크와 본즈처럼 딸이 있는 술루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본즈가 굳이 자신의 개인 생활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도 아니거니와 그는 말을 하는 사람이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는 위치에 있으니까요. 아마 엔터프라이즈 함선에서 크루들의 비밀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은 본즈가 아닐까요.


2) 

사실 조안나의 나이를 잘 알지 못해서, 커크와 처음 만났을 때, 커크는 30~32살 정도이고, 본즈는 36~39정도, 조안나는 9~10살 사이 정도의 나이로 잡았습니다. Cranky한 아버지와는 달리, 본즈를 굉장히 사랑하기는 하지만, 조용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조지아에 있는 본즈의 집에서 함께 여름 휴가를 보내면서 깔깔거리면서 웃는, 나뭇잎이 푸르게 반짝이고, 햇살에 물빛이 반사되어 또 하나의 햇살처럼 빛나는 시간을 보내는 그들을 보리고 싶었어요.


3)

상편-하편으로 나누어질 예정입니다. 제발 하편까지 쓸 수 있게 끈기를 주소서(...)



*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피드백은 항상 큰 힘이 되며,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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